의외로 몰랐다? 오키나와 무덤의 역사

옥릉
나하시 역사박물관 제공

오키나와의 무덤 순례① 풍장

오키나와의 무덤이라고 하면 거북이 등껍질처럼 생긴 ‘거북이 무덤’이 유명하죠.

오키나와의 무덤의 역사를 살펴보면, 거북이 무덤이나 파풍 무덤과 같은 무덤을 만들게 된 것은 16세기 이후로, 긴 류큐의 역사에서 보면 의외로 최근의 일이다.

거북이 무덤이나 풍혈묘가 세워지기 전에는 동굴이나 숲 속에 시신을 안치하는 이른바 ‘풍장’이 일반적이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따라서 화장 풍습은 역사가 짧고 본토와는 다른 독특한 풍습을 가지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류큐 왕국 시대에 성지로 여겨졌던 구타카시마에서는 1960년대까지 풍장(風葬)이 행해졌다고 한다.

오키나와의 무덤의 역사②파풍묘

풍장 풍습은 곧 그 주변을 돌로 쌓아 인위적으로 굴을 넓게 파고 지붕을 만들게 되었다. 이렇게 만들어진 것이 ‘파풍묘(破風墓)’라고 불리는 집 모양의 무덤이다.
슈리의 왕가의 무덤으로 유명한 ‘타마우동(玉陵)’이 이 파풍묘의 대표격이다. 이토만시의 ‘유키지배문중묘(幸地腹門中墓)’도 유명하다.

이 오래된 무덤들이 암벽을 등지고 있는 큰 무덤이었다면, 현재 대부분의 개인 무덤은 평지에 지어진 집 모양의 아담한 돌무덤으로 ‘야그와바카’라고도 불린다.

오키나와의 무덤의 역사③ 거북이 무덤

오키나와의 무덤에서 유행하는 디자인인 거북이 무덤은 1600년대 이후 등장한 것으로 추정된다.
오키나와의 초기 거북이 무덤은 이에우돈바카(伊江御殿墓)와 고사마루(護佐丸)의 무덤 등이 유명하다.

거북이 무덤은 무덤의 역사에서 보면 의외로 새로운 형태이다. 한편, 그 독특한 무덤의 디자인은 중국의 사상적 영향을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중국에서는 사람이 생을 마치면 어머니의 자궁으로 돌아간다는 ‘모체회귀(母體回歸)’ 사상이 있다.
거북이 무덤의 형태는 여성의 자궁을 상징하며, 그 안에 뼈를 넣음으로써 사람이 태중으로 돌아간다는 중국 고유의 사상을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거북이 무덤은 옛 중국의 사상적, 문화적 영향을 많이 받았음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이 시대에 무덤을 짓는다는 것은 왕족과 사대부에게만 허락된 일로, 일반 서민들이 무덤을 가질 수 있는 단계까지는 이르지 못했다.
류큐 왕부 시대에는 일반인이 무덤을 짓는 것이 금지되어 있었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널리 유행한 것은 메이지 시대 이후부터다.